베트남 여성에게 낙태권이 있을까?
베트남의 심각한 성비 불균형
한 사회의 여성 100명에 대한 남성의 비율을 측정하는 성비(sex ratio)는 1에 가까울수록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것을 출생하는 신생아들에게
적용하면 그 해 태어나는 남아와 여아의 수를 비교할 수 있다. 보통 이 수치가 자연 성비인 105를 넘어서면 인위적인 조작이 있었음을 의심할 수 있는데 한 때 우리나라에서 116을 넘어서던 성비가 2008년 태아성감별이 금지(혹은 제한적 허용)된 후로 100을
향해 회복되는 현상이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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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현재 베트남의 성비는 112.8로
예측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태아성감별을 실시하기 전인 1995년
성비(113.2)와 비슷한 수치이다. 성비가 가장 높은 베트남
북부의 Sơn La지역은 120에 달하고 Hưng
Yên 지역과 삼성전자 공장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Bắc
Ninh지역이 각각
118.6과 117.6으로 그 뒤를 잇는다. 아들을
낳기 위해 출산을 거듭하는 가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아들이 아니란 이유로 스무 차례 가까이 인공유산을
시행한 여성의 이야기가 뉴스에 보도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베트남에서는 2003년에 태아의 선별적 인공유산이 금지되었지만 법의 효력이 국가의 구석구석까지 미치지는 못 하는 실정이다.
베트남에서
남아선호로 인한 부작용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아들을 낳기 위한 반복되는 출산으로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고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혼과 축첩 등이 행해지는 것 역시 사회문제로 대두된다. 이대로 30년이 흐르면 신붓감을 차지 못하는 남성이 23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아들 선호로 인한 가정 내
남녀차별도 문제로 지적된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베트남 정부는 딸만 낳은 노부부에게 지원금을 주는 제도를 마련하는 등 남아선호를 없애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상속에 있어서는 이미 아들과 딸의 차별을 없앴고, 무리한 아들 출산을
막기 위해 공직자의 자녀수를 제한하는 정책도 세웠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문화와
남녀 간 임금 격차가 거의 없는 사회 환경도 이를 돕고 있지만 아직까지 효과는 미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공 유산을 금지하는 인구법
현재 베트남
정부는 태아의 성 감별 및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 매체인 Petro Times에서 지난 해 보도한 인구보건부의 통계에 따르면 태아의 성별을 인지하고 있는 임신부는 83% 이상에 이르고 있다. 이 조사에 의하면 도시 지역 임신부의 85.1%, 농촌 지역 임신부의 82%가 태아 성별을 알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는 태아 성감별이 지역에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준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베트남에서 태아 성감별은 선택적 출산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낳는다.
▲ 인구법의 취지 및 내용에 대해 설명하는 뉴스의 한 장면. 사진 유튜브 영상 캡처.
2015년 발표된 베트남의 인구법 제 3차
초안에는 낙태를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임신
12주를 경과한 임신부는 특수한 경우(강간, 근친상간, 태아의 기형 등)를 제외하고서는 인공 유산이 금지된다. 성에 대해 개방적인 사회 풍조를 바로잡고 산모의 건강을 위협하거나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임신 및 낙태를 막기
위한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현재까지 찬반 논란이 치열하다.
인구법을
찬성하는 이들은 낙태 금지 규정이 베트남의 강력한 남아선호사상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는 태아 성감별의 현실과 태아의 성별에 의해 출생 전 태아의 낙태 여부가 결정되기도 하는 현재의 상황이 새로 도입되는 인구법으로 인해
통제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현재의
생명경시 풍조와 높은 수치의 청소년들의 임신 및 낙태를 줄일 수 있을 거라 분석한다. 베트남의 건강
잡지 SứC KHỏE & Đời sống에 따르면 응웬 티 호아이 듭(Nguyễn Thị Hoài Đức:이하 듭)교수의 조사 결과 베트남 전국의 14세에서 17세 사이 청소년 가운데 36%가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지난 해 베트남의 여러
매체가 보도한 모자보건부의 통계에 따르면 매년 베트남에서는 25만에서
30만 건에 이르는 인공 유산이 이루어지고 이 가운데 5천에서 6천 건은 미성년자가 대상이다. 인구법을 옹호하는 이들은 인구법이
포함하고 있는 인공 유산 금지법이 이러한 통계 수치를 낮춰주는 결과로 이어질 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인구법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VOV에 의하면 베트남 생물 과학 협회의 응웬 런 융(Nguyễn Lân
Dũng:이하 융)회장은 인구법 초안이
생물학적 교육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융 회장은 지역, 국가 등의 큰 개념에서 소년과 소녀의 비율이 50대 50의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설명하고 소년과 소녀가 유전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사람들이 충분히 교육받는다면
소년만을 존중하는(남아선호) 문제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낙태를 통제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꼬집으며 올바른 피임법 사용과 태아 성감별에 대한 철저한 규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인구법 초안 올해 국회 제출
지난 해 4월 28일, 호치민에서는
국회의 사회문제 회의에서 인구법 초안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 회의에서 응웬 티 킴 띠엔(Nguyễn Thị Kim Tiến) 보건복지부 장관은 낙태 금지를 둘러 싼 다른 나라들의 예를 거론하며 성별 선택(성감별) 및 건강에 위해가 될 수 있는 낙태를 제한하는 것은 인권행사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부는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며 인구법이 가부장적인 남아선호를 막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고 일부는 여성과 부부에게 가족계획의 권리를 빼앗아 오히려 여성 인권에 해가 된다고 비판한다.
2015년부터 논쟁을 빚어온 새로운 인구법은 올해 승인을 위해 국회에 제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남은 시간 동안 여러 의견을 수렴해서 인구법을 찬성 혹은 반대하는 이들이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태아의 인권과 여성의 신체 자유, 그리고 남아 선호 사상의 철폐 등의 가치를 모두 아우르고 더불어 어떠한
권리도 침해되지 않는 효율적인 절충안이 등장하기를 기대해본다.